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수학 교수이자 수학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인 리처드 보처즈Richard Borcherds,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버넌 스미스Vernon Smith, 컴퓨터 다운로딩 창시자 브램 코언Bram Cohen, 영장류 동물학자로 유명한 던 프린스 휴즈Dawn Prince-Hughes, 애니메이션 <포켓몬>의 창조자 사토시 타지리.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다른 자폐증상과는 달리 언어 지체나 인지 발달의 지연은 나타나지 않지만. 매사에 몹시 서투른 동작으로 대응하고 특이한 언어를 남발하는 증상을 보이는 걸 말한다. 많은 유명인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자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반사회적이며 배타적이고 극히 사소하고 비현실적인 관심사에만 집착한다는 편견이 널리 퍼져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와 같은 견해는 전혀 사실이 아닌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고정관념이 끈질기게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매우 복잡한 신경계 질환인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때문일 것이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18개월이 몇 초라는 질문 ‘47,304,000초’라고 대답하고, 10자리가 넘는 소수素數를 즉각적으로 계산하고, 몇 만 년의 달력 날짜를 모두 외우고 특정한 정확한 요일이 무엇인지 답하는 서번트들이 종종 소개되었다. 이들은 모두 특별히 수학을 배운 적도 없었고, 경우에 따라선 간단한 덧셈을 못 하기도 했다. 이후 놀라운 계산 능력을 가진 수학 서번트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꾸준히 지속되었는데, 다니엘 타멧도 그 중 한 명이다.
수학 서번트로 유명한 다니엘 타멧은 그의 책 『뇌의 선물Embracing the wide sky』에서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파이(π)의 소수점을 22,514 자리까지 암송했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굉장한 마술로 여기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다니엘의 파이 암송에는 5시간 9분이 걸렸다.)이런 게 보통사람의 능력으로는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 색상과 문자로 이루어진 숫자를 인식하는 다니엘만의 능력에 따라 몇 주 동안 훈련한 결과로 이루어진 일이지 결코 마법이나 요술 같은 건 아니었다.
1979년 런던에서 태어난 다니엘 타멧은 아기였을 때부터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비명을 지르며 끊임없이 울어댔다. 타멧은 측두엽 간질로 인해 여러 차례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그는 네 살 때 동생과 놀고 있었고 간질 발작을 겪었는데, 그 발작 이후에 새로운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동생이 86×86×86×86 같은 수학 문제를 내면 타멧은 10초 만에 답을 말했다. 다니엘은 25세까지 자신에게 자폐증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사들이 그를 서번트 증후군과 고기능 자폐증, 즉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하는 데는 거의 25년이 걸렸다.
타멧은 숫자를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는 마음에는 0부터 1만까지의 모든 숫자가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가진 3차원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타멧은 숫자 15가 흰색과 노란색의 뭉툭하며 둥근 모양이라고 설명한다. 숫자 9는 불길함이 느껴지는 짙은 청색이고, 숫자 37은 죽처럼 물컹거리는 회색, 숫자 89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흰색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숫자들은 촉감까지도 가지고 있는데 소수는 조약돌처럼 매끄럽고 둥글둥글하며, 정수는 깨진 돌처럼 뾰족해서 거친 느낌이 난다고 한다. 어떤 수는 빠르거나 느리기도 하며, 어둡거나 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1971년 1월 31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무슨 요일인지 물으면, 그의 마음속에는 저절로 푸른색이 떠오른다. 수요일은 늘 푸른색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에 대한 공감각은 서로 다른 능력과 연관된 뇌의 영역이 비정상적인 연결을 형성할 때 발생한다. 대부분 사람의 뇌는 색채 인식, 숫자 조작 능력, 언어 능력 등이 모두 별개의 부분에서 다르게 작용하며, 정보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정보는 나누어져 보관된다. 하지만 공감각에서 뇌는 그 구역들 사이에서 상호소통을 한다.
타멧의 3차원 형상 숫자들은 서로 합쳐지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까지 한다. 53×131이라는 문제에서, 그는 그 답을 모양과 질감으로 설명했다. “53은 둥근데 밑으로 갈수록 더 커지는 모양입니다. 131이라는 숫자는 모래시계 모양으로 긴 숫자입니다. 이것들이 곱해지면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는데, 그 모양은.... 6943!”
▲ 그림 2. 다니엘 타멧이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53× 131을 이미지로 곱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사진.(왼쪽) 이와 같은 방식으로 타멧은 수학 문제를 시각화하며 답을 찾을 수 있다.2004년 3월 14일, 25살의 청년 다니엘 타멧이 파이의 날Pie Day에 파이π 암송하기 유럽 기록을 깬 것은 타멧의 숫자에 대한 집착의 결과이자 성과였다. 어린시절 간질 경련을 수차례 겪었던 타멧은 미국에서 가장 큰 간질 단체인 미국 간질 협회를 돕기위해서 파이의 날에 간질 기금을 위한 모금행사 마련했다.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을 나타내는 파이는 이상적 도형인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눈 비율로 항상 일정한 수로 나타나기 때문에 수학에서는 이상적인 수로 여겨진다. 보통사람들은 3.14159의 처음 몇 자리 숫자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날이 3월 14일인 것은 3.14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타멧은 그 숫자를 한 번만 읽었고 그 가운데 22,514개를 기억할 수 있었다. 숫자를 다시 암송하는 연습을 몇 주 동안 한 뒤에, 타멧은 파이의 날에 22,514개의 숫자를 차례로 말했다. 타멧의 파이 암송에는 총 5시간 9분이 걸렸다.
파이처럼 긴 숫자를 외우기 위해서 타멧은 마음속에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낸다고 말했다. “나는 숫자를 가지고, 색과 모양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숫자로 언덕이나 땅이나 하늘을 이루는 조합에 넣을 수 있지요”
다니엘은 수학뿐 아니라 언어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2005년 다니엘은 다큐멘터리 <믿을 수 없는 두뇌를 가진 소년The Boy With The Incredible Brain>에 출연했는데,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제작진은 다니엘에게 배우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언어인 아이슬란드어를 익혀보라고 권했다. 당시 이미 10개 언어(영어, 핀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리투아니아어, 에스페란토, 스페인어, 루마니아어, 에스토니아어, 웨일스어)를 마스터한 다니엘은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후 그는 라이브 아이슬란드 TV에서 현지 아나운서와 유창한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게다가 다니엘은 지금까지 약 1,000단어로 구성된 자신의 언어인 Mänti를 만들기도 했다.
타멧의 능력이 언제나 축복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자폐증 때문에, 어떤 것들은 여전히 다니엘을 힘들게 했다. 그는 "계산할 자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해변 산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차를 마셔야 하며, 아침 식사로 45g의 오트밀 죽만 먹는다. 또한 그는 자신과 인터뷰하는 기자가 입은 셔츠의 박음질 수를 세는 강박을 버리지 못한다. 해답이 없는 수학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슈퍼에 장을 보러 가는 일상적 행동에도 “심리적 자극이 너무 많아요. 모양도 질감도 하나하나 살펴봐야 해요. 가격도, 과일도 야채도 다 챙겨야 해요. 그래서 '이번 주에는 어떤 치즈를 먹을까?'라는 생각을 못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뿐 아니라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2007년 자신의 인생을 얘기한 자서전 『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Born on a Blue Day』이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권의 책을 출판했다. 타멧은 국제 자폐 협회와 간질 협회와 같은 단체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며, 그의 특별한 능력을 더 자세히 연구하기를 원하는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속해서 일하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에는 타멧의 저서 2권 『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북하우스), 『뇌의 선물』(홍익출판사)이 번역되었다.) 타멧은 자신의 책을 감명깊게 읽은 독자와 편지를 교환하며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프랑스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뿐만 아니라 소설과 시를 출판하는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다니엘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자폐증과 서번트 증후군 진단을 받았지만, 그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어쩌면 한 과학자가 “서번트는 보통 그들이 하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에게서 나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Tammet's intriguing cases of linguistic idiosyncrasies expand our notions on what it means to be human ... most fascinating is Tammet's own astonishing linguistic mind, in which a single word evokes fully textured experiences--an innate ability that would dazzle any storyteller in love with words and their deepest mean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