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뇌연구하여 호문쿨루스 뇌지도화
외과의사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1891~1976)는 세계적인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펜필드와 그의 동료들은 1930년대 "몬트리올 시술Montreal Procedure"로 알려진 혁신적인 수술법을 개발했습니다. 펜필드는 국소 마취제를 사용하여 환자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뇌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전극을 사용하여 환자의 뇌 일부를 자극했고, 환자는 그 자극에 의해 유발 된 감각을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서 의사는 뇌전증 환자의 뇌에서 발작을 유발하는 부위를 식별하고 안전하게 제거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위대한 업적은 수백 회의 뇌수술을 통하여 얻은 정보를 사용하여 뇌 피질의 기능적 지도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뇌전증 병변과 뇌종양을 수술하면서 시행한 전기적 뇌 피질 자극으로 발견한 성과입니다.
19세기 신경과학계에서는 큰 논쟁거리가 존재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각각 구분된 영역이 존재하여 국재화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에 반하여 인간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뇌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존에는 불가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1861년 폴 브로카Paul Broca는 실어증 환자의 다수가 대뇌 전두엽 동일한 부위에 병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영국의 존 휴링스 잭슨John Hughlings Jackson은 많은 환자들이 유사한 형태의 발작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가락으로부터 시작해서 발, 다리 순서로 떨리거나, 팔꿈치, 아래팔, 손 순서로 떨리는 환자를 보고 발작 허리케인이 신체 지도를 이 지역 저 지역 휩쓸고 다닌다고 추측했습니다.
폴 브로카가 왼쪽 전두엽의 언어 중추를 발견한 이후 테오도르 메이너트Theodor Meynert와 칼 베르니케Carl Wernicke가 그 뒤를 이어서 왼쪽 대뇌 반구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측두엽 이랑이 음성 언어를 담당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제프 쥘 데제린Joseph Jules Dejerine은 왼쪽 각이랑angular gyrus이 문자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영역임을 발견했습니다. 뇌 기능의 국재화를 위한 임상병리적 연구는 프랑스의 장 마르탱 샤르코Jean Martin Charcot에 의하여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는 해부를 통하여 인간의 얼굴, 팔, 발, 다리의 운동, 감각기능과 대뇌 피질 중심전이랑precentral gyrus과 중심후이랑postcentral gyrus의 기능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기존에는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임상병리학적 방법에 의존하였습니다. 이것을 병변 분석lesion analysis이라고 합니다. 환자의 뚜렷한 신경학적 결함을 뇌의 특정 영역과 연결 짓는 것인데 환자의 사후에 부검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병변 분석은 실제로 적용하는데 제한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다양한 임상 증상 중에서 단일 증상을 분리하고 이를 광범위하게 손상된 뇌의 특정 부분과의 연관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실제로 폴 브로카의 환자들은 언어 중추를 넘어서 광범위한 영역에 손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더 세밀한 뇌 국재화 방법으로 동물의 대뇌 피질의 특정 지점에 약한 전류를 흘려보내고 그 반응을 관찰하는 방법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1870년 구스타프 프리치Gustav Fritsch와 에두아르트 히치히Eduard Hitzig는 개의 대뇌 피질을 자극하여 운동 반응을 유발하고, 그 부분을 절제하면 자극 반응과 관련된 근육이 마비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의 데이비드 페리어David Farrier는 영장류를 포함한 다양한 동물에게 전기 자극과 절제를 사용하여 대뇌 피질 기능의 국재화를 시도했습니다. 위 연구들을 통하여 전극을 이용하여 뇌 피질을 자극할 수 있음을 발견했으며 실제도 운동 및 감각 기능의 대략적 지도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뇌는 하등 동물과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1874년 미국의 로버츠 바솔로Roberts Bartholow는 굿세머리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30세의 여자 환자가 내원했는데, 그녀는 두피에 악성 궤양이 발생하여 머리뼈에 직경 5cm 정도의 구멍이 발생한 상태였습니다. 동물 뇌 실험에 관심이 많았던 바솔로는 그녀의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해보기로 결정하고 이미 질병으로 많이 쇠약해진 환자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대뇌 전기 자극을 받은 환자는 운동 반응을 일으켰으나 많이 힘들어하였고, 이후 의식을 잃고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인간의 뇌에는 각 기능을 담당하는 지역이 구분되어 있으며 전극을 통하여 연구가 가능하다고 학회에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의사들이 환자를 수동적 도구로 사용한 그의 행동을 비난하였고,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이후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20세기가 되자 인간 대뇌 피질 기능의 국재화를 위한 노력이 간헐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보스턴의 하비 쿠싱Harvey Cushing, 브레슬라우의 오트프리드 푀르스터 등 다양한 신경외과의들이 대뇌 전기 자극을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환자를 국소 마취 하에서 수술하면서 대뇌를 자극하여 운동과 감각 기능을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베를린의 페더 크라우스Fedor Krause는 외상 후 뇌전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를 수술하면서 운동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전기 자극을 최초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대뇌 피질 자극의 결과를 기록하기 위하여 수술실에 3명의 의사를 두고 환자의 반응을 관찰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와일더 펜필드가 본격적으로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펜필드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많은 뇌전증 환자들이 뇌 속에 반흔 조직이나 종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이를 잘라내어 꺼내는 수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명백한 외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도 있었고 이는 발작의 진원지가 불분명하여 매우 까다로운 수술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바솔로와는 다르게 펜필드는 낮고 정확한 전압을 사용하였고, 깨어있는 환자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뇌 지도를 제작하였습니다. 운동 피질은 단순한 관찰을 통해서 그릴 수 있지만 감각 피질의 지도를 만들 때에는 환자가 반드시 깨어있어야 했고, 능동적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펜필드의 임상 차트는 그의 과학적 발견을 뒷받침하는 토대입니다. 각 차트에는 환자의 병력, 신체검사 및 방사선 소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트의 가장 핵심은 펜필드의 상세한 수술 보고서와 대뇌 피질의 전기적 자극 효과에 대한 세심한 기록입니다. 펜필드와 그의 조수는 각 환자의 뇌지도 측면 또는 뒷면에 이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각 지도는 펜필드가 머리뼈절개술을 통하여 확인한 대뇌 피질 및 피질하의 병리적 소견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은 피질의 전기 자극을 통하여 체성 감각, 시각, 언어 또는 운동 반응을 일으킨 지점을 국재화하여 기록했습니다. 뇌지도에는 또한 뇌전증 활동이 기록되고 대뇌 피질 자극에 의해 발작이 발생한 부위를 보여줍니다.
스케치를 보완하기 위하여 사진 촬영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펜필드는 스케치를 주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사진은 제한이 많았습니다. 그 시기의 카메라는 심도가 한정적 이였고 뇌가 맥동하게 되면 사진은 쉽게 흐려졌습니다. 그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모든 세부사항들을 스케치로 기록했습니다.
펜필드는 뇌전증 환자의 수술은 과학자의 실험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수술실이 나의 실험실이라는 그의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환자의 발작을 일으키는 병리적의 특성과 위치에 관한 근거가 분명할 때 이에 기초한 가설을 통하여 수술 결정을 하였습니다. 각 가설은 환자의 발작 패턴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세심한 신경학적 검사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뇌전증 병변의 예비적 국재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뇌파검사 및 방사선학적 검사를 통해 확인 후 수술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전기를 통한 뇌 피질 자극은 수술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는 절제될 조직이 발작을 유발하는 특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절제술이 감각, 운동 또는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함 이였습니다. 이 방법으로 펜필드는 사람의 피질을 도표화 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다로운 수술의 성공을 위해서는 외과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극에는 1000분의 5초 동안 2볼트의 전기가 공급되었습니다. 환자는 의사의 기술과 판단력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사는 환자가 대뇌 피질 자극의 영향을 정확하게 보고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펜필드는 작은 숫자로 자극을 준 뇌막 부위를 표기했습니다. 만약 자극을 주었을 때 뇌전증 증상을 일으키거나 뇌전증 발작 이전에 항상 나타나는 느낌을 초래하면 수술을 시작합니다. 대부분은 그 부위에 있는 뇌 조직의 일부를 절개했습니다. 펜필드는 ‘망가진 뇌보다 뇌가 없는 편이 낫다’는 신조를 추종하는 사람이였습니다.
펜필드와 그의 동료들은 뇌종양이나 뇌전증을 유발하는 부위의 절제를 위해 수술 한 105명의 환자의 수술 기록, 뇌지도 및 수술 사진을 검토했습니다. 각각의 전기 자극 지점은 28개의 뇌지도 중 하나에 할당되었고, 각 지도는 운동, 감각의 특정 기능을 나타냈습니다. 여기에는 혀, 입, 턱, 얼굴 및 목의 운동과 감각, 삼키기, 발성, 손가락, 손, 팔, 어깨, 몸통, 다리 및 발의 감각 및 운동, 자율신경계 기능, 머리와 눈의 움직임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각 자극 지점은 실비우스열과 롤란드열Sylvian and Rolandic fissures과의 거리에 따라서 뇌 지도에 표시되었고, 각 지점들이 모여 무리를 형성한 도표를 만들었습니다. 펜필드는 1937년 “전기 자극으로 연구한 사람의 대뇌 피질에서의 신체 운동 및 감각 표현”이라는 제목으로 동료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한 장의 그림으로 감각운동 피질의 구조와 기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함 이였습니다. 호문쿨루스는 작은 인간, 난쟁이를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중세 시대 유럽인들은 정액 속에 완전한 형태를 가진 작은 사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엄지손가락, 혀 및 입술에 해당하는 영역은 이상할 정도로 크고 상대적으로 머리, 몸통 및 다리에 해당하는 영역은 작습니다. 이것은 각 신체 부위의 크기를 피질에서 차지하는 면적을 고려하여 동일한 비율로 만든 모습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삽화는 훌륭한 연구 결과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매우 독창적이고 유용한 시도였습니다. 뇌 지도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뇌의 기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펜필드의 호문쿨루스 그림을 보면서 공부했고 수많은 학술지에 인용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호문쿨루스는 인체의 다양한 부위들과 대뇌 피질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신경생리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운동 및 감각 호문쿨루스감각피질과 운동피질을 자극하면 예측할 수 있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측두엽을 자극하면 많은 환자들에게서 특이한 반작용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 상황을 이미 경험해본 것 같다거나, 반대로 모든 게 낯설고 꿈처럼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많은 환자들은 갑자기 환각처럼 청소년 시절의 장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환자들에게 자극을 주자 노래를 듣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또렷해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환자 M.M.은 26세 여성으로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뇌전증 환자였습니다. 그녀의 발작은 데자뷔 경험으로 시작했으며, 자주 회상을 하다가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그녀는 삶의 일부를 새롭게 체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결국 펜필드에게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측두엽에 전류를 흘려보내자 젊은 비서였던 그녀는 아주 친숙한 사무실과 책상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 남자가 연필을 손에 쥐고 책상에 기대어 있는 것이 보여요.” 측두엽의 11번 지점을 자극하자 청각 기억이 작동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말이죠. 제가 살았던 동네의 누군가였어요.” 잠시 후 같은 부위를 자극하자 잘 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무를 파는 목재상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13번을 자극하자 서커스단이 있는 사육제가 열리고 있다고 하며 커다란 차가 여러 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15번 부위를 자극하자 이 수술은 언젠가 한 번 해본 듯한 느낌이 든다며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펜필드가 말로만 어떤 부위에 자극을 주었다고 했을 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보고 들은 것은 그녀에게 왠지 모르게 친숙한 것이었습니다.
환자 J.T.는 수술 도중에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사람들이 웃고 있어요. 아, 그들은 남아프리카의 제 사촌들입니다.” 환자 N.C.는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한 남자와 대화 중이였고, 제 겨드랑이에 책 한권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책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마라고 말해주더군요.” 1cm 옆으로 전극을 이동하자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한 일입니다.” 환자 R.M.은 수술 중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남성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제가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있었던 일입니다. 아주 잘 보이네요.” 환자 T.S.는 측두엽 자극 직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동네, 인디아나주에 있는 동네가 보이네요. 뮤지컬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전기 자극을 중단하자 음악이 중단되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뇌전증 환자 S.B.의 실비우스 열구Sylvian fissure 부위를 탐사하던 중 갑자기 환자가 “저곳에 피아노가 있는데 누군가가 연주 중입니다. 아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자리를 다시 자극하자 “누군가가 오 마리(Oh Marie), 오 마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노래가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제곡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환자 D.F.는 실비우스 열구 안쪽을 자극하자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습니다. 펜필드가 그 지점을 반복적으로 자극하자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반복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당시 유행가인 “Rolling Along Together”가 떠오른다고 말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그녀는 그 곡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곡이 들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의 환자들이 보인 반응들은 특정한 기억과는 무관한 일반적인 감각이지만, 내측 측두엽을 자극하여 얻은 반응들은 뇌의 다른 부위를 자극하여 얻은 반응과 달랐습니다. 구체적으로 개인이 획득한 경험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감각이 아닌 기억과 관련된 환각, 환청 이였습니다. 환자는 과거의 사건으로 돌아가 다시 신선한 경험을 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대체로 시각적, 청각적 경험들이 되살아났습니다.
펜필드와 그의 동료는 측두엽을 자극하여 얻은 이 특이 반응을 청각과 시각으로 분류하여 기록하였습니다. 환자들은 아프리카에 사는 사촌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유명한 오페라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 순간에도 본인이 펜필드에게 수술을 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시각적 반응은 주로 과거의 경험에서 왔습니다.
측두엽의 전기 자극으로 기억의 흔적을 활성화 하는 것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발견이었습니다. 이럴 때의 기억은 환자들에게 분명하고 상세하게 나타났습니다. 측두엽은 한 때 보았거나 들었거나 생각했거나 꿈꾸었던 모든 것,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상과 체험 모두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펜필드는 의식의 흐름은 신경에 흔적을 남겨두고 이는 나중에 전기로 재활성화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람 일생의 모든 순간이 뇌 안에 저장되어 있고, 그가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 기록은 온전하게 남아 있으므로 내측 측두엽의 기억 피질을 자극하면 기억을 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절대적 기억을 가지고 있고, 펜필드는 우리의 뇌가 경험을 녹음기처럼 저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환자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온전한 기억이며, 이 기억은 표면 기억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어 변하지 않는 진짜 기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본인의 저서에서 꿈에서는 낮에 경험한 사건들의 파편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저장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기억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우리가 경험한 모든 사건들 중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절대적 기억을 암시하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일단 정신적으로 소유했던 것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절대적 기억력이라는 생각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졌던 사람이 프로이트만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생리학자이자 사진작가인 존 윌리엄 드래퍼J.W. Draper는 일찍이 뇌세포에 우리의 경험이 완벽하게 저장되어 있고 이것은 아직 현상하지 않은 사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르게이 코르사코프Sergei Korsakoff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는 심각한 기억 장애도 원래의 흔적은 지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우리가 체험한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저장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면이나 또 다른 전문적인 기술을 이용하면 접근하지 못했던 세부적인 사항들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심리학자들은 무엇보다 와일더 펜필드의 실험을 지적합니다. 펜필드는 그 누구보다 절대적 기억 이론,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체험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기록해둔다는 이론을 정립하는데많은기여를한사람입니다
펜필드가 녹음기 가설을 제시하고 그동안 수집한 실험적 증거를 소개한 후, 그의 절대적 기억에 대한 주장이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펜필드는 자신의 주장을 온갖 최신 가전제품을 이용하여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은유들은 논문에도 등장했고 언론에도 많이 소개 되었습니다. 미국 가정에서 녹음기와 카메라를 아주 많이 구비한 시기여서 이 같은 비유는 대중들에게도 현대 과학이 뇌를 통해 무엇을 밝히려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펜필드가 1933년 뇌전증 환자의 뇌에서 최초의 회상을 유도해낸 이후, 50년 동안 사람들은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뇌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펜필드가 신경의 녹음기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회의적입니다. 펜필드 논문의 1288명의 환자 가운데 520명이 측두엽 자극을 받았으나, 이 중 40명만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 92퍼센트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환각과 회상이 기묘하게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고 동일한 부위를 자극하여도 전혀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술 중 환자들은 녹음기가 재생된다는 것 보다는 여러 가지 과거의 기억이 뒤섞인 기억 파편의 재구성에 가까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습니다.
1982년 몬트리올 신경학연구소의 피에르 글로어Pierre Gloor와 그의 동료들은 뇌전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측두엽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 29명의 뇌 깊숙한 곳에 전극을 장착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부위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환자 가운데 62퍼센트에서 펜필드가 보고한 현상이 나타났고 두려움을 위주로 데자뷔, 회상, 환각 등 다양했습니다. 모든 지각은 변연계 구조물의 자극에 의하여 발생했으며, 측두엽의 표면을 자극하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펜필드는 표면에 전극을 접촉하였지만 이것이 뇌 깊숙한 속에 있던 구조물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뇌세포는 대략 1000억개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듯 뇌세포가 천문학적으로 많으나 단 하나의 뇌에도 경험이 저장될 공간은 충분한 셈입니다. 하지만 절대적 기억이라는 이론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 역시 이 뇌 조직의 저장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평균 10만 개의 세포를 잃어버리는데, 1년이면 약 3000만 개에 달합니다. 뇌 조직 또한 쇠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바뀌는 조직과 순환으로 이루어지고 화학 작용에 의하여 조절됩니다. 뇌는 테이프 녹음기처럼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학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펜필드가 주장한 절대적 기억은 뇌와 관련된 다른 인기 있는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재생산 되었습니다. “우리는 뇌의 1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혹은 “여자들은 2개의 대뇌반구 사이를 더욱 잘 연결하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더 잘한다.”라는 신화입니다. 이는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싶어서 믿기 때문에 신화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여러 분야의 학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은 모든 것을 붙잡고 있다는 점을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체험한 것 대부분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