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번트증후군 (Savant syndrome)

레슬리 렘키(Leslie Lemke)

레슬리 렘키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이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며, 그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지금도 레슬리가 연주하고 노래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놀라운 능력에 경외감을 느끼며, 그의 놀라운 삶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출생과 장애

입양을 기다리는 신생아를 돌보는 일을 신청한 간호사 출신인 메이 렘키May Lemke가 첫 번째로 돌볼 아이는 어머니의 포기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 아이는 여러 장애를 가진 매우 아픈 아이였다. 사회복지과는 이 어린 소년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메이가 잠시 동안이라도 잘 돌봐줄 수 있는 위탁 가정을 제공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레슬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갓난아이 1952년 1월 31일에 조산으로 태어났다. 레슬리는 미숙아 망막병증이라고 하는 미숙아 실명의 원인이 되는 수정체 후방의 섬유화를 앓고 있었다. 이것은 망막이 과도하게 증식하는 상태로, 때로는 눈의 배액관을 막아 일종의 녹내장을 일으킨다. 왼쪽 눈의 압력이 증가하고, 눈이 말 그대로 터질 수도 있어서 4개월째에 수술로 제거해야 했다. 6주 후 오른쪽 눈도 같은 이유로 외과적 제거가 필요했다. 수술 후 레슬리는 수술 후 감염과 다른 합병증을 겪어야 했다. 1986년 CT 뇌 스캔은 왼쪽 전두엽에 상당한 손상이, 왼쪽 두정엽에 약간의 손상, 왼쪽과 오른쪽 후두엽에 약간의 손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복지과는 메이 렘키에게 레슬리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레슬리를 집으로 데려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메이는 "여기로 레슬리를 보내주세요. 그리고 그 애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레슬리가 메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초기에 그는 너무 작고 연약했고, 거의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울거나 삼킬 수도 없었다. 메이는 레슬리의 혀에 시리얼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목을 쓰다듬어 삼키도록 격려함으로써 그가 삼키는 법을 배우도록 도왔다. 메이는 레슬리에게 아낌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주었다. 그녀는 맹인이고 장애가 있는 이 어린 소년의 물리치료사, 간호사, 멘토, 가정교사이자 보호자였다. 헬렌 켈러에게 앤 설리번이 있었던 것처럼 레슬리 렘키에게는 메이 렘키가 있었다.

이 행복한 환경 속에서 레슬리는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2살 때 레슬리는 앉은채로 기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의료 차트에 따르면 레슬리는 노래를 부르고 몇 단어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타인에게 거리감을 보였고, 과도한 집착이 있어 보였다. 신경과 전문의가 3살 때 레슬리를 검사하고 팔과 다리의 경련과 보행 장애를 발견했다. 의사는 또한 대화를 시작하기보다 문구를 반복하는 경향인 반향 언어에 주목했다. 반향 언어는 집에서 매우 뚜렷하고 심했다. 메이의 두 딸은 엄마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끔 레슬리가 그날 방문한 모든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정확한 어조와 방식으로 반복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침대 밑에서 레슬리가 마치 악기의 현처럼 침대 스프링을 손, 발바닥, 팔꿈치로 치는 것도 발견했다.

메이는 레슬리의 걷기 어려움을 해결했다. 그녀는 레슬리의 몸과 자신의 몸을 연결하는 스트랩 시스템을 고안했고, 레슬리가 점진적으로 체중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왔다. 레슬리는 어색하지만 그 방식으로 걷기 시작했다. 결국 레슬리는 그들이 살았던 작은 별장으로 가는 길을 울타리를 붙잡고 도움 없이 가는 법을 배웠다. 레슬리가 5세가 되자 의사는 그의 걷기 능력을 확인했다. 그는 또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만, 반향 언어는 지속되다. 의사는 레슬리의 어머니가 그와 함께 아주 잘 해냈지만, 시설 입소가 필요할 때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메이의 사랑, 헌신, 독창성 및 결단력으로 인해 그러한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7살쯤에 메이는 레슬리에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그녀가 그에게 가르친 걷기처럼, 그녀는 그녀가 알고 있는 간단한 영어 곡을 연주하면서 레슬리의 손을 그녀의 손 위에 올려놓는 방법으로 레슬리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곧 레슬리는 그가 들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레슬리는 봉고 드럼, 우쿨렐레, 콘체르티나, 아코디언 등 다른 악기를 연주했다. 그해 의사를 방문했을 때 의사의 메모에는 레슬리가 그를 위해 노래하고, 설압자를 음악에 맞추어 두드리고, 로큰롤 곡의 제목을 낭송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레슬리는 9살 때 코드 오르간 연주를 배웠다. 그러나 레슬리는 여전히 반향 언어와 모방 행위를 사용했고 대화에 능숙하지 않았다. 그는 옷을 입는 데 도움이 필요했고 손에 경련이 있어서 식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슬리가 피아노를 치면 경련이 사라졌는데, 마치 일상 대화에서 말을 더듬다가도 청중에게 강의를 하기 시작하면 말더듬이 사라지는 현상과 같았다. 12살 때 레슬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했다. 영화 <배트맨>의 테마송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고 메리는 그가 큰 소리로 끝없이 연주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방송국은 메이가 선택했으며 클래식 음악을 거의 포함하지 않았다.

재능의 발견

레슬리가 14살쯤 되었을 때, 메이와 남편 조Joe는 텔레비전에서 <신서리 유얼즈Sincerely Yours>라는 영화를 봤다. 레슬리는 시각 장애인이라서 영화를 들을 수만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메이와 조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2~3시경에 TV가 있는 거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메이는 아마도 조가 텔레비전을 켜놓고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그가 들은 영화의 주제가인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레슬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흠 잡을 데 없이 연주한 것이었다. 그는 한번 들은 곡을 정확하게 재현해서 연주할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레슬리의 가족의 표현에 의하면 “기적이 만발한 날”이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에도 레슬리에게 그 작품을 연주해달라고 요청하면, 레슬리는 그날 저녁에 방송된 아나운서의 영화 소개까지 그대로 들려준다. “오늘 밤의 영화는 도로시 말론과 바실 레스본이 출연하는 <신서리 유얼즈>입니다. 그가 아름다운 흑발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자... 이제 일요일 밤 영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레슬리는 그날 저녁에 들은 아나운서의 억양까지 그대로 재현한 후, 협주곡 전체를 연주했다.

공연 연주자의 삶

레리는 22세에 한 박람회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는 찬송가를 부르고, 유명 가수들의 흉내를 냈다. 지역 신문에서는 이 놀라운 청년에 관한 기사를 썼다. 1980년 위스콘신주 폰드 두 락Fond du Lac 콘서트 출연은 연합통신 뉴스로 다루어졌다. 그해 12월 CBS 이브닝 뉴스 진행자는 다음과 같이 프로그램을 마감했다. “이 이야기는 한 청년, 피아노 그리고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81년 1월 TV 쇼 <댓츠 인크레더블That 's Incredible>은 메이, 레슬리, 조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그 이후에도 모닝쇼를 비롯한 많은 프로그램들에서 레슬리 가족의 이야기는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1983년 10월 23일에 방송된 <60분 60 Minutes>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미국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레슬리에게 인사했다. 인터뷰에서 메이는 “기적이 만발한 밤”을 자세히 설명했고, 레슬리는 협주곡을 활기차게 연주했다. 프로그램 말미에 메이는 그러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말했다. “레슬리의 뇌는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뇌의 일부는 완벽하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남았기 때문에 레슬리가 재능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60분> 프로그램과 다른 TV 쇼 출연하면서 레슬리는 유명인이 되었다. 청중들은 레슬리를 사랑했고, 그에게 매료되었다. TV 쇼들은 도전곡을 듣고 그대로 연주해내는 레슬리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한 제작자는 도전곡으로 어떤 곡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들이 원하는 어떤 곡이라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짧은 곡인지 긴 곡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왜냐하면 레슬리는 시간 제약에 관계없이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제작자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진행하려 했다. 어떤 공연에서 그들은 “Rhapsody in Blue”를 선택했다. 그들은 처음 몇 분 동안 레슬리의 "Rhapsody in Blue" 연주를 들었지만, 카메라는 광고 시간이 되어 멈추었다. 그러나 광고가 끝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레슬리는 여전히 연주 중 이었다. 그 후 또 다른 광고로 송출이 중단이 있었지만 레슬리의 "Rhapsody in Blue"는 계속되었다. 프로듀서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느님께 기도했지만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또한 레슬리는 공개 콘서트에서도 각 작품의 연주를 끝까지 마쳐야했다. 메리는 콘서트의 도전곡 부분에서 신청곡을 받을 때 관객이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직접 종이에 써야한다는 것을 일찍이 배웠다. 큰 소리로 여기저기서 요청하면 레슬리는 제목을 들은 순서대로 곡 전체를 연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수 많은 곡들이 예약된 주크박스처럼 말이다. 요청곡이 많으면 각 곡들이 순서대로 완전히 처리 될 때까지 연주는 밤새 계속되었다. 레슬리의 연주는 콘서트에서든 TV 생방송이든 항상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았다.

▲ 그림 2. 레슬리와 어머니 메이

부모의 사망

레슬리의 양어머니 메이는 알츠하이머 병의 진행으로 기억력이 점점 퇴색하기 시작했다. 메이의 알츠하이머 병이 눈에 띄게 진행된 시기에도 레슬리가 어머니를 위해 연주하면 메이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랑스럽게 레슬리를 바라보고 다시 활기를 띠고 웃고 따라 노래했다. 메이는 레슬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고, 이제는 레슬리가 메이에게 생명을 불어 넣고 있었다. 1985년부터 메이는 딸들과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레슬리의 아버지 조는 1987년에 사망했다. 메이는 1993년 11월 6일에 사망했다.
블라인드 톰이 베튠 대령이 사망 후 그랬던 것처럼 레슬리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연주를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레슬리는 “엄마가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라고 말하고 밴드와 함께 계속 공연했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레슬리의 음악적 성장

메이의 사망 이후 몇 년 동안 레슬리는 많은 변화와 개선을 보였다. 레슬리의 재현 기술은 항상 훌륭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단순한 반복을 넘어 즉흥 연주로 이동했다. 한 콘서트에서 어린 소녀가 용감하게 다가와 도전곡으로 “미시시피 핫도그Mississippi Hot Dog”라는 곡을 연주했다. 레슬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소녀의 연주를 듣고 그 곡을 충실하게 연주했다. 그러나 작품의 끝 부분에서 레슬리가 피아노 벤치에서 조금 안절부절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연주를 마치자마자 바로 즉흥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4분짜리 협주곡이었다. 그 곡은 “미시시피 핫도그 변주곡”이었다. 그는 템포와 피치를 바꾸고,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놀라운 이해를 바탕으로 변형한 것이다. 레슬리는 평생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이 없지만, 자신이 배운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레슬리의 음악적 발전에는 추가적인 단계가 있었다. 처음에는 멋진 재현 능력이 있었고, 그 이후에 놀라운 즉흥 연주가 온 것이다. 이제는 레슬리가 자신의 노래를 작곡, 창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곡들과 매우 유사해 보였지만 이제는 “Down on the Farm in Arpin”과 같이 정말 독창적인 곡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그는 그가 좋아하는 농장의 동물에 대해 연주하고 노래한다. 그가 자신의 마당에서 들었던 새들의 노래를 모방하여 작곡한 곡 “Bird Song” 역시 독창적이다. 즉흥성과 창의성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레슬리의 콘서트에서 청중은 항상 노래를 요청하는데, 이미 레슬리는 대부분의 곡들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때때로 누군가는 레슬리가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곡을 요청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허구적인 곡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누나인 메리는 레슬리가 요청곡을 연주하도록 정중하게 요청한다.

“그 작품 아시나요, 레슬리?”라고 메리가 물으면, “네, 알아요.”라고 레슬리가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 곡을 연주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물론 연주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된다.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곡이다. “레슬리, 그 곡이 맞아요?” 메리가 물으면, “네 맞아요.” 레슬리가 확실히 말한다. “레슬리, 확실해요? 아니면 당신이 지어내고 있나요?”라고 메리가 재차 물으면, “내가 지어내고 있어요.”라고 레슬리가 고백한다. 급조한 곡이지만 청중이 들을 수 있는 훌륭하고 독창적인 작품인 것이다.

확대 ◀ 그림 4. 30년간 레슬리 램키를 지켜본 대럴드 트레퍼트Darold Treffert 박사는 램키가 단순한 IQ 측정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음악적 지능, 예술적 지능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헌신적 사랑과 돌봄으로 램키가 창의적이며, 음악적으로 더 발전해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럴드 트레퍼트 박사(왼쪽)과 램키(가운데), 그의 누나 메리가 함께 찍은 사진.


1986년 테스트에서 측정된 레슬리의 IQ는 58이였으며, 테스트를 종합하면 그는 중등도 지체장애 범위에 속했다. 그러나 그 IQ 점수는 1997년 텍사스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레슬리가 보여준 가장 특이하고 천재적인 능력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번에는 그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노래를 듣고 연주하라는 도전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도전자와 동시에 연주하도록 요청을 받은 것이다. 도전자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시작하면, 레슬리는 3초 정도 기다렸다가 그녀와 협주하기 시작했다. 레슬리는 그가 방금 들은 것을 받아들이고, 피아니스트와 거의 동시에 연주했다. 작품이 끝날 무렵에는 레슬리가 듣고 연주하는 사이에는 1초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이러한 병렬처리는 드문 능력이다. 재능 있는 동시 통역가 스피커의 말과 동시에 번역을 해주는 능력과 유사하다. 이러한 병렬처리 기능은 높은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다. 레슬리의 IQ는 58로 측정되지만, 이 수준의 병렬처리를 수행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볼 때 우리가 IQ라고 명명 한 검사는 제한적 지능만이 측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확대 ▲ 그림 5. 레슬리 램키는 활발한 공연을 해오고 있다. 그의 연주는 공연 실황 DVD로 만나 볼 수 있다.

계속되는 레슬리의 연주

확대 ▲ 그림 6. 레슬리 렘키는 누나 메리 파커의 도움을 받으며 활발히 공연 중이다.


레슬리는 오늘날까지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메이의 딸인 메리 파커Mary Paker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녀는 어머니 메이가 1993년에 사망한 후 간병인 역할을 맡았다. 메리는 메이와 마찬가지로 레슬리의 음악적 재능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어야 하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레슬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이 많고 음악적으로도 더 발전하였다. 그는 점점 더 창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복제에서 즉흥 연주로, 창의적 연주로의 그의 전환은 인상적이다.

참고문헌과 사이트
Islands of Genius, 2010, Darold A. Treffert
To Creation and Beyond: The Remarkable Life of Leslie L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