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초민은 아주 어린 나이에 동물과 기병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한 자폐증 화가이다. 1967년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난 나디아는 3살 때부터 놀라운 미술적 재능과 빠르고 정확한 라인으로 원근법을 활용하여 박람회장의 말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그림 발달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끼적이기, 비율 무시, 과장된 묘사 같은 규칙을 뛰어넘고 바로 사실적으로 대상을 그렸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다섯살 때 빠르고 뛰어난 솜씨로 주로 말, 수탉 등 동물들을 소재로 그렸다. 나디아가 3살에서 9살 사이에 그렸던 그림이 1977년 출판되자 전 세계 사람들은 그 실력에 놀랐고, 그녀의 뛰어난 그림 능력은 미디어와 정신과 및 미술 치료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번트 능력자들에 관한 연구를 해온 정신과 의사 올리브 색스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둘 다 그들의 저서에서 그녀의 작업에 대해 언급하였다. 2016년 48세로 사망한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여전히 발달 심리학 교과서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나디아는 신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성장할수록 그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나디아 능력의 특이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 성인기의 특징을 차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디아는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으로 전기공학을 전공한 아버지와 화학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삼 남매 가운데 두 번째 자녀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는 건강해 보였지만, 전형적인 아기처럼 발달하지 않았다. 나디아가 2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동작이 지나치게 느렸고 전반적으로 운동발육이 지연되었으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엄마가 웃거나 말을 해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살이 될 때까지 독립적으로 걷기, 말하기를 전혀 못했다. 이 시기 나디아의 가족은 그녀가 점점 더 폐쇄적이고, 자극에 반응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디아가 3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3개월간 병원 치료를 받게 돼서 할머니가 나디아를 돌보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병원 치료를 마치고 집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나디아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즉 세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동안 나디아는 혼자서는 나이프나 포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스스로 옷을 입을 수도 없었다. 종이를 조각조각 찢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놀이를 몇 시간이고 지루해하지 않고 계속하는 등 언어장애와 학습의 문제 및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진단과 학교 교육
이상행동과 심각한 학습장애를 보인 나디아는 4살 반이 되었을 때 학습장애로 진단고 노팅엄에 있는 특수학교에 들어갔다. 교장선생님에 따르면 나디아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스스로 화장실에는 갈 수 있었찌만, 숟가락으로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동작이 느렸고 가끔 비명을 지르며 화를 내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보였다. 거의 말이 없었고 사용 단어는 10개 미만이었다. 그러나 조각그림 맞추기나 꼭지 퍼즐 같은 다양한 지각운동 활동에는 끈기와 관심을 보였다. 나디아는 오랫동안 앉아서 허공을 응시했고, 어른이나 아이들과도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나디아가 5세 때 노팅엄 대학의 아동 연구팀은 나디아가 자폐증과 심한 언어 지연의 특징을 가진 정신지체라고 진단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폐증이라는 말이 언급되었다. 이 평가에서 나디아가 보인 행동은 학교에서 묘사한 행동과 매우 흡사했다. 언어 능력에서 영어로는 약 10단어, 우크라이나어로는 더 적은 수의 어휘를 가지고 있었고, 구두 표현력은 1세에서 18개월 사이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언어 이해력도 매우 제한적으로 6개월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물의 범주를 일반화하고 형성하는 능력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다. 반면 운동 조정과 시각적 지각 능력은 그녀의 강점으로 나타났으며 드로잉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났다. 당시 나디아의 어머니는 다이나가 3세부터 그렸다는 그림들을 연구팀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그림들을 본 연구팀은 그런 뛰어난 그림 실력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나디아가 그런 그림을 그리는게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보이는대로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대로 그린다.
나디아를 관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크레파스를 줬을 때 나디아는 그저 종이에 크레파스를 마구 휘갈길 뿐이었다. 나디아의 예술적 재능을 입증할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디아에게 뾰족한 볼펜 하나를 건내자 상황은 완전히 바꼈다. 무기력하던 어린 소녀가 갑자기 활기를 띠더니 빠르고 자신 있게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을 그리며 미소 짖기도 하고 혼잣말도 했다. 나디아는 그림을 그릴 때면 평소처럼 말없이 가만히 있거나 느린느릿하게 행동하던 모습이 아닌 정확하고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림들을 그려나갔다. 나디아의 시점, 음영, 원근법 등 모든 것이 또래들보다 몇 년 이상 앞섰다. 유아들에게 사각형이나 마름모를 그리라고 하면, 한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직선 네 개를 그어서 완성한다. 하지만 나디아는 두 번의 동작으로 마름모를 완성했다. 눈과 손의 조화, 즉 협응력이 뛰어났다. 아이들은 보통 머뭇거리며 조금씩 선을 이어나가지만, 나디아는 선의 끊김없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나디아는 신발 끈조차 스스로 묶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디아에 대한 심층적 연구서인 『Nadia Revisited』의 저자 로나 셀프Lorna Selfe는 “내 생애 그렇게 완전한 경악의 순간은 없었다”고 표현했다. 연구팀은 나디아가 그림을 매우 빠르게 그리고, 중단 없이 한 번에 전체 그림을 그린 후 장식의 디테일을 덧붙여 그림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색깔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나디아의 특징이었다. 볼펜의 검정과 종이의 흰색이 전부였다. 연구팀의 엘리자베스 뉴슨Elisabeth Newson 박사는 “이 극도로 특이한 아이는 훨씬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 그림 2. 나디아가 10살 때 그린 회전목마 스케치
후기 아동기부터는 의사소통 발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언어발달에 집중적인 노력이 기울어졌다. 나디아는 엘리자베스 뉴슨의 진단에 따라 자폐아 전문 특수학교에 들어갔다. 나디아의 언어 능력은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했고,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나디아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디아는 그림을 그리도록 장려받았고, 치료사는 그녀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미술책을 활용했다.
나디아가 9세 때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 후부터 나디아는 다른 아이들의 그림을 따라하며 점점 또래 어린이 수준을 그림을 그렸다. 비슷한 시기인 1977년 로나 셀프가 나디아의 그림이 포함된 책을 출판하면서 나디아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나디아는 학교도 그만두고, 나디아의 삶도 급격히 흐트려졌다. 나디아는 여전히 기발하고 상당한 기량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그림은 점점 어린애처럼 변해갔다. 이 시기에는 시각적이고 단일한 관점을 묘사하는 그녀의 재능있는 그림과 더불어 어린아이처럼 그린 그림을 함께 그리기도 하였다.
나디아는 12살 때 다양한 인지기능 평가 테스트를 받았다. 나디아가 사용하는 어휘는 200~300 단어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대화는 제한적이었다. 언어적 인지적 기능이 부족했지만, 기하학적인 설계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났다. 이 시기 나디아는 그림을 덜 그리기 시작했고, 그 능력도 떨어져 있었다.
나디아는 성인이 되자 자폐 재단의 후원으로의 성인 요양소로 입소했다. 당시 나디아는 도움 없이 능숙하게 음식을 먹고, 씻고, 옷을 입고 벗을 수 있었다. 약간의 감독하에 식사를 준비하는 것 같은 가정에서의 기본적 활동은 대체로 가능했지만,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나 돈 계산을 이해하지 못했고,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책과 특히 그림과 삽화에 대한 지속적인 열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마는 나디아는 그림을 가끔 그렸을 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도록 유도했을 때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약 5세에서 6세 사이 어린이의 그림 수준으로 수준이 매우 떨어졌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그녀의 오래된 재능을 반영하는 그림이 나타나곤 했다. 나디아가 20살부터 그녀를 관찰한 미국 미술 치료사 데이비드 헨리David Henley는 나디아가 언어와 자율성에 있어 큰 진전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나디아는 26세에 마지막 평가를 받았는데, 그녀의 인지적 능력은 더욱 퇴보해 있었다.
▲ 그림 3. 그림3-1 나디아가 20대 초기에 그린 말 그림은 유아 시절과 비교해 퇴보한 것이 한눈에 보인다.
미술치료사 데이비드 헨리는 나디아가 42살 때 다시 그녀를 방문해 재평가했다. 측정된 IQ는 40이하였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때 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몸짓으로 가르킬 수 있을 뿐이었다. 나디아는 즉각적인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 외에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없었다. 그림 그리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림 요청을 귀찮아했고,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연필과 볼펜을 부러뜨렸다. 결국 나디아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었고 48세에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림의 특징 및 분석
나디아는 3살 반에 연습없이 펜을 들고 낙서가 아닌 사실적 이미지를 그리는 능력을 보였다. 보통 아동이 그림 발달을 시작할 때 낙서같은 원이나 막대인간 같은 단순한 형체를 끼적이는데 반해 나디아는 처음부터 낙서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대부분 사람들이 말을 그리는 방식과는 달리, 훈련된 성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질주하는 말을 기억만으로 스케치로 윤곽부터 시작해서 무작위적인 세부 사항으로 그려나갔다. 말갈기, 말굽, 마대 하나 하나를 따로 그린 후, 이 부분의 특징들을 서로 연결하는 단단한 선을 늘어놓았다. 이 선들이 연결되면서 부분들이 제 위치에 놓이고 형태가 잡혔다. 다니아의 그림은 단축법, 선형 원근법, 선의 겹침과 개체 내부 간의 올바른 비율 사용을 보여준다. 그림을 그릴 때 나디아는 항상 흰 종이에 미세한 펜으로 가는 선을 사용해 매우 정확하게 빠르게 그렸다. 보통 40분 안에 말의 머리를 그렸고 어떤 그림에도 색채 사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디아의 첫 번째 그림 대상이었든 말은 진짜 살아있는 말이든 회전목마 말이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나디아는 노팅엄에 있는 공원에서 말과 회전목마를 본적이 있으나 실제 동물들을 본 경험은 매우 적었다. 런던에서 살았던 나디아는 펠리컨, 수탉과 같은 동물들도 실제 보았다기보다 그림책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 그럼에도 나디아는 책에서 보여주는 평평한 이미지의 방향을 바꾸면서 동물들의 특성을 잘 묘사했다. 연구가들은 그녀가 어떻게 동물들의 특성을 잘 이해했는지를 궁금해하였다. 말, 펠리컨, 수탉 이외에도 사람, 기차, 개도 그렸다.
나디아는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다른 각도에서 말을 묘사할 수 있었다. 동일한 물체가 다른 관점에서 보이도록 연속적으로 회전시키켜 그릴 수 있었든 것이다. 나디아의 그림을 본 모든 사람들은 나디아의 나이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그림은 어린아이의 전형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의 그림에 훨씬 가까웠다. 셀프는 “그림 그리는 다른 자폐아 그룹을 찾아 그들의 그림 수준을 보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나디아 만큼의 그림 수준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림을 배우지 않고 다른 어린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예술적 기술을 개발한 듯하다.
심리학자인 니콜라스 험프리Nicholas Humphrey는 논문 <Cave Art, Autism, and the Evolution of the Human Mind>에서 나디아가 그린 그림과 선사시대의 동굴 예술을 비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나디아의 그림과 동굴 예술은 내용과 스타일이 놀랄 만큼 유사했다. 나디아와 동굴의 벽화는 모두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느낌이다. 이들이 유사하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무수하게 겹쳐지는 선들에 있다. 두 그림 모두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은 과감한 선들이 서로 겹치며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연구가들은 나디아를 서번트 증후군의 특이한 케이스로 보고 있다. 첫째, 그녀의 그림 능력이 나타난 3살이라는 매우 어린 나이와 독특한 그림 스타일, 그리고 뛰어난 그림 실력은 다른 서번트 증후군의 아티스로부터 돋보인다. 둘째, 유아 시기 이후에는 그림의 묘사에서 그녀의 독창적인 기량은 대부분 사라졌거나 더 이상은 사용하지 않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다른 서번트 증후군에서도 특별한 능력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례들이 있었다고 지적하지만 적어도 7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니디아의 실력은 추가 설명해야 할 사안이라고 미술치료사 데이비드 헨리는 주장했다.
나디아의 그림 기술의 퇴보와 상실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녀의 뛰어난 그림 기량은 3살에서 6살 사이에 대부분 나타났고, 9살에는 6살의 그림 수준보다 떨어졌다. 그 후 이전 그림 실력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나디아의 이례적 그림 능력은 15세 무렵에 완전히 사라졌다. 미술치료사 데이비드 헨리는 이것을 “학습된 자폐증의 퇴행”의 사례로 보았다. 헨리는 나디아가 9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디아의 어머니는 나디아가 그림을 그리도록 장려하고 발전하게 칭찬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보상과 강화가 나디아의 그림 실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고 헨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로나 셀프는 이 이론을 반박하는데, 나디아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이전부터 그림의 퇴행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상과 강화는 어머니의 사망 이후에도 그녀의 선생님들로부터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언어적 발달과의 관련성이다. 언어적 부재가 나디아의 시각적 이미지를 발전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는 가정이다. 나디아는 특수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최대 10단어 정도의 어휘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나디아는 학교에서 언어발달을 위한 학습을 받았고, 완전한 문장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의사소통이 향상되었다. 언어능력이 향상되면서 더욱 집중적인 언어교육이 이루어졌다. 언어발달 교육과 사회적 기술을 익혀나가면서 그림 기량에 퇴보를 보였으며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림의 정교함이 어린시절 그림보다 훨씬 떨어졌다. 또 다른 연구가들은 뇌기능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뇌 변화를 겪는 환자들에게서 예술적 기술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그 후에 퇴색해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디아의 경우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는 왜 나디아의 그림 능력이 사라졌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참고문헌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677584/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5/dec/09/nadia-chom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