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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트다운(Piltdown)

Introduction

필트다운이 남긴 교훈

과학적 사기의 이유

대중적으로도 “필트다운”이라는 단어는 정교하게 계획된 “사기” 혹은 “조작”과 동의어가 되었다. 『사기, 신화, 그리고 불가사의Frauds, Myths, and Mysteries』의 저자인 케니스 페이더Kenneth Feder는 필트다운 화석을 보기 위해 대영 박물관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페이더는 박물관 전시실에서 화석을 찾기 힘들어서 안내 데스크의 여성에게 다가가 필트다운 유물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대답했다. “오 그건 전시하지 않는답니다. 그건 다 쓰레기인걸 아시잖아요 선생님”

확대 ▲ 그림 25. 『사기, 신화, 그리고 불가사의Frauds, Myths, and Mysteries』 는 고고학의 소기심, 신화와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며 '인간 과거'의 진실을 말해준다.

케니스 페이더는 과학적 사기의 7가지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1. 돈 2. 명성 3, 민족주의 4. 인종주의 5. 종교 6. 과거에 대한 욕망
7. 미친 마음” 필트다운 사기는 단순히 돈이나 명예 같은 개인적 욕망의 결과는 아니다. 페이더가 열거한 이유들이 사람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복잡하게 얽힌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필트다운 사기의 강력한 용의자인 찰스 도슨은 명예, 더 구체적으로는 왕립 학회의 회원이 되고 싶은 열망으로 가짜 화석을 만들었다면,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위해서 이 사기극에 스스럼없이 빠져들었다. 여기에 당시 경쟁적으로 발견되던 화석 인류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영국인들 민족적, 국가적 열망도 담겨있을 것이다. 검증과 객관성을 기반으로 해야 할 과학이 이렇게 개인 혹은 국가적 열망으로 어긋나는 것은 비단 100여 년 전의 일회성 해프닝만은 아니다. 멀지 않은 곳, 오래지 않은 시기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일본이었다.
후지무라 신이치의 이전에 발견된 것보다 10배 이상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를 찾는 뛰어난 능력에 대해서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고고학자였다.

그가 직접 발굴한 유물들은 일본 국립박물관을 장식했으며 일본의 역사학계는 그의 발견 덕분에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만 했다. 과학적 훈련을 거의 하지 않은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후지무라의 발견 이전까지 일본의 선사시대 역사는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60만 년과 비교하면 빙산에 불과한 3만 5천 년에 불과했다. 그의 발견으로 일본 선사시대를 16배까지 앞당긴 일본에서 고고학계와 대중은 모두 후지무라를 칭송했고, 그는 단숨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한 신문사의 사진 한 장으로 싱겁게 끝나고 만다. 싱겁게 끝이 났다고 썼지만, 그것은 어마어마한 사기극이었다. 마이니치 신문사가 2000년 10월 22일 후지무라가 발굴 중이었던 유적지에 몰래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한다. 마이니치신문은 후지무라의 유물에 의심을 품은 한 대학교수의 제보로 6개월 전부터 구석기취재반을 특별 편성해 유적 발굴 현장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후지무라는 바로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60만 년 전의 석기들이 매장된 유적지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1월 5일 그가 기자회견 전날 석기를 묻는 사진과 며칠 후 그 석기를 파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의 캡처 사진을 발표했다. 후지무라는 신의 손이 아니라 거짓을 만들어낸 사기꾼에 불과한 것이었다.

확대 ▲ 그림 26. 『후지무라가 몰래 유물을 묻는 것을 포착한 사진을 담은 마이니치 신문의 폭로 기사(왼) 후지무라는 기자회견에서 사과했지만 자신이 수십년간 행해온 사기와 조작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일본 고고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고고학계의 정밀조사에 따르면 후지무라는 주로 한국이나 중국에서 입수한 유물을 일본 고대 토양층에 심어서 연대를 조작하는 방식을 썼다. 또한, 그가 70년대 이후 발굴의 관여한 유적 180곳 중 162곳에서 조작 흔적이 발견되었다. 졸업 후 독학으로 고고학을 연구하던 후지무라가 명성을 얻은 것은 1981년에 그림 후지무라가 몰래 유물을 묻는 것을 포착한 사진을 담은 마이니치 신문의 폭로 기사(왼) 후지무라는 기자회견에서 사과했지만 자신이 수십년간 행해온 사기와 조작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미야기현에서 4만 년 전 유물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이전까지 일본에서 발견된 유물의 연대는 가장 오래된 것이 3만 년 전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열도는 후지무라의 유물 발굴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 20년간 후지무라는 100m 달리기 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듯 일본의 구석기 시대의 연대를 계속 앞당겨 동북아시아 최고의 연대인 80만 년 전 유물까지 발견했다. 그런데도 마이치니 신문의 폭로 전까지 한 사람의 믿을 수 없는 연속적인 행운에 대해 의심하는 출판물이 하나도 없었다.

후지무라 신이치의 사기극은 필트다운과 많은 점이 닮아있다. 특히나 그 속임수의 이유, 동기가 그렇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명성과 존경을 갈망했던 찰리 도슨의 거울상이며, 자신의 나라가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길 바라는 민족적 바람은 영국과 일본의 고고학계에 과학적 검증을 소홀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필트다운과 후지무라 신이치의 사기는 과학계의 부끄럽고도 불행한 사건이지만 이 일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과학 저술가 케니스 페이더는 자신의 『사기, 신화, 그리고 불가사의』의 서문에서 “이 책이 20년이 넘게 출판되며 8판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성공을 반영하고 있다..... 나는 인간의 과거에 허튼소리로 늘 분주한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적었다. 지금도 여전히 비과학적인 주장을 전파하고 이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재치있게 비꼬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적 사기와 미신은 끝없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고인류학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은 비판적 경계를 유지하며 과학적 태도를 견지한다면, 결국 진실을 밝혀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