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호빗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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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 호빗을 둘러싼 논쟁들

작성일2019.09.25

호빗을 둘러싼 논쟁들

호빗의 이상한 해부학

고인류학계에서 대두된 첫 번째 의문은 호빗의 크기에 관한 것이다. 이 화석의 뼈는 왜 그렇게 작은 것일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저자들은 대표 표본인 LB1이 완전히 새로운 호미닌 종이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그들이 다른 조상들처럼 호모 에렉투스일 수도 있으며, 호빗이 보여주는 극단적으로 왜소한 체형은 단순하게 일부 코끼리나 하마가 “섬에 격리돼 왜소화된(island dwarfing)” 섬 왜소증의 결과라고 했다.

스테고돈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작은 크기에 관한 가설 중 하나는 ‘섬 왜소화((insular dwarfism)’로 불리는 현상을 입증해주는 증거로 자주 언급된다. 섬 왜소하는 ‘격리된 환경에서 포식자가 없는 가운데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경우 나타나는 극도의 크기 감소’ 현상이다. 한 집단이 특정한 환경에 격리돼 있어 외부로부터 유전자 공급이 끊어지면 ‘유전자 풀’(genetic pool)이 급격히 단순화되면서 왜소증과 같은 형질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활동반경이 좁고 생태계가 단순한 섬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플로레스 섬에서는 섬 왜소화 현상뿐 아니라 그 반대의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플로레스 섬의 최상위 포식자인 코모도왕도마뱀은 현생 도마뱀 가운데 가장 커서 길이 3m, 몸무게 70kg까지 자란다. 도마뱀 뿐만 아니라 플로레스에서만 사는 큰 쥐도 있다. 플로레스자이언트쥐(Papagomys armandvillei)는 몸 길이가 45cm이고 꼬리는 70cm까지 자란다. 또한 지금은 멸종한 키 1.8m, 몸무게 16kg의 거대한 대머리황새(Leptoptilos robustus)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거대화와 왜소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플로레스가 고립된 섬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대륙과 연결된 적이 없었던 섬으로 생물종이 유입될 수 있는 경로는 극히 제한적이며 섬에 정착했더라도 섬 특유의 고립된 환경에서 소수의 종이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대륙과는 다른 선택 압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압에 따른 변화가 잘 나타나는 것이 ‘크기 변화’다.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의 양에 따라 덩치가 커지거나 작아진다. 이것을 ‘섬의 법칙(Island rule)’ 또는 이를 주장한 포스터(J. Bristol Foster)의 이름을 따서 ‘포스터의 법칙(Forster’s rule)’이라고 한다. 포스터는 섬에 사는 동물의 경우 본토에 존재했던 포식자의 일부가 없기 때문에 포식 압력이 완화되면 작은 생물이 커지고, 토지 면적이 작아지면서 식량 자원이 제한되면 큰 생물이 작아진다는 설명했다. 포스터는 고립된 섬에서 생존한 일부 매머드, 코끼리, 하마, 보아뱀, 사슴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건조하고 대양의 한 가운데 고립된 섬인 플로레스는 수렵채집인을 지원하기 위해 매우 제한된 범위의 육지동물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스테고돈, 쥐, 박쥐, 파충류만이 섭취 가능한 자원이었다. 이 같은 자원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섬의 법칙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에게도 적용된 것일까?

새로운 인류인가? 소두증환자인가?

인류의 진화발자취를 보면 체형이 직립보행에 더 적합하게 바뀌고 뇌 용적이 커진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뇌가 커지는 방향으로 인류 진화가 진행된 건 사실이지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은 뇌 크기만으로 지능을 얘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호미닌 가계도에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보통 왜소증이 생기더라도 뇌 용적이 줄어드는 정도는 그보다 미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우 몸의 성장이 왕성한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 뇌의 성장은 거의 다 끝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왜소증은 주로 사춘기의 성장이 더딘 결과다. 섬이나 고립된 지역에서 발견되는 여러 피그미족들을 봐도 키는 140~150cm 내외이지만 뇌 크기는 1000cc가 넘는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설사 호모 에렉투스의 변종이라고 하더라도 뇌 용적이 500~650cc는 돼야 한다. 따라서 일부 인류학자들은 ‘플로레스 섬의 LB1’이 이상소두증(microcephaly)에 걸린 피그미족 현생인류라고 주장했다. 이상소두증은 뇌가 비정상적으로 작아지는 질환으로 이 병에 걸리면 백치가 된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1400년 전부터 300년 전까지 마이크로네시아의 팔라우 섬에 거주했던 작은 크기의 인간들과 비슷한 난쟁이 호모 사피엔스의 잔존 집단이라는 가설도 제시했지만, 이들의 특징들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와 전부 유사한 것은 아니었다. 팔라우 표본들의 상세한 분석 결과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몇 가지 유별난 특징들이 조상으로부터 전달되었다기 보다는 환경 요인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논란에 대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주요 연구자인 피터 브라운 교수는 두개골 전문가인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인류학과 딘 폴크(Dean Folk) 교수와 함께 LB1의 두개골을 정밀 분석한 결과를 2005년 4월 8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들은 침팬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피그미(호모 사피엔스), 이상소두증 환자(호모 사피엔스) 등 다양한 인류의 두개골과 LB1의 두개골을 비교했다. 그 결과 LB1의 두개골 구조는 피그미나 이상소두증 환자의 뇌구조와 확연히 달랐고 크기가 비슷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도 달랐다. 연구자들은 “두개골 안쪽 형태는 호모 에렉투스와 비슷하다”며 “뇌 용적은 작지만 전두엽과 측두엽이 잘 발달돼 있어 고도의 인지능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논문에 대한 반박이 곧 뒤따랐다.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 테우쿠 자콥(Teuku Jacob)교수팀은 2006년 9월 5일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오늘날 리앙부아 동굴 부근에서 살고 있는 람파사사 피그미족의 조상 가운데 이상소두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LB1 두개골에서 나타나는 비대칭과 이상 발달이 이상소두증에서 보이는 소견과 비슷하다고 결론지었다.

폴크 교수팀은 이에 대해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두개골 내부의 형태를 3차원 CT(컴퓨터단층촬영)로 재구성해 LB1의 형태가 이상소두증 환자보다 정상인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2007년 2월 13일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이상소두증 뇌는 정상 뇌에 비해 소뇌가 상대적으로 커 돌출해 있고 눈구멍 표면이 좁고 납작하다”며 “LB1에서는 이런 특징이 없다”고 설명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를 발견한 브라운 교수는 “LB1 말고도 대여섯 명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골격이 발견됐는데, 치아형태 같은 특징을 고려해 볼 때 두개골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백치인 이상소두증 환자들이 동굴에 모여 살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지적 능력이 뇌의 크기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란 의미일까?

실제로 리앙부아 동굴에서 함께 출토된 피그미 코끼리 정도의 포유류를 사냥하려면 호빗이 여럿 협동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또 이들은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고 동물의 뼈에는 살을 발라 먹기 위해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물론 다양한 석기도 출토됐다. 불과 400cc 정도의 뇌로 최근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뇌 용적과 기능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작은 뇌와 신체 크기가 섬 왜소화 현상의 결과라면, 이는 섬 왜소화 법칙을 따르는 최초의 인간 사례일 뿐만 아니라 더욱 큰 뇌를 향해가는 인간 진화의 보편적 경향성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들이 발굴된 곳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도살하기 위한 석기도 함께 출토되었고, 그런 고기를 요리했을 불의 잔류물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런 행위는 같은 뇌 크기의 침팬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LB1이 살았던 때는 1만 8,000년 전에 불과했다. 이때는 우리의 마지막 친척인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지고도 수천 년이 지난 후였다.

호빗의 진짜 나이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의 다국적 연구팀이 2004년 <네이처>에 발표된 LB1의 골격에 대한 첫 연대 측정 결과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74,000년 전에서 12,000년 전 사이쯤에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2016년 연구진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화석을 비롯해 돌 도구, 숯, 퇴적물, 화산재 등 동굴 안에서 발견된 다양한 잔해들을 우라늄-토륨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화석은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에서 6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처>에 새로 발표된 이 연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1만2천 년 전까지 살아남은 것으로 봤던 기존 학설을 뒤집고, 이들의 멸종 시기를 3만8천년 가량 앞당긴 것이다. 이전 발표와의 차이는 2003년 당시 나이를 재면서 더 이후 연대의 표본이 섞여들어 가는 바람에 연대 측정이 잘못됐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마지막 생존 시기인 약 5만 년 전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호주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호모 사피엔스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마치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와 유사하게) 멸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피스대의 애덤 브룸(Adam Brumm) 박사는 "플로레스인은 유럽에서 번성하다 현생인류와 만난 뒤 수천 년 만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한 운명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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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과정
화석의 특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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